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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달] 독립영화 큐레이션 구독 서비스, 다달 7호 (2026.09.01.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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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김소영│1990│드라마│38분

<황홀경>

김소영 | 2002 | 다큐멘터리 |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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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소영


  이 글은 두 편의 영화에 관한 것이다. <황홀경(2002)>과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90)>. 스타일이 상당히 다른 두 편의 영화가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공존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여성민우회와 여성영상집단 바리터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1987년 노동 평등법 제정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노조 결정 과정을 통해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영화다. 반면 <황홀경>은 당대 시네필의 시간에 스며들면서도, 젠더에 기반 한 전복의 이미지–사운드 정치다.



  '경'의 아키볼로지 <황홀경>


  내겐 ‘경’의 시기가 있었다. 경들(경전, 경치, 거울)의 활보, <황홀경>은 경의 소우주 속에서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 <황홀경(2002)>, 극영화 <경(2009)>, 책으로는 『근대의 원초경(2010)』, 『한국 영화 최고의 10경(2010)』.

  또한 <황홀경>은 아카이브적 영화 실천(아키볼로지), 한국 영화사의 필름을 전유한 영화적 실천이다. 영화학자 캐서린 러셀(Catherine Russell)의 저작 『발터 벤야민과 아카이브적 영화 실천들(Archiveology: Walter Benjamin and Archival Film Practices)』은 아카이브를 영화적 창작 및 비평 방법론의 지평으로 확장시킨다. 아키볼로지는 아카이브의 단순한 보존적 차원을 넘어, 기존의 시청각적 잔해들을 재사용, 재활용, 전유(appropriation), 그리고 차용하는 영화적 실천을 가리킨다. 아카이브를 죽은 기록의 창고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역동적인 장치로 사유하게 만든다. 이 아키볼로지 속에서 <황홀경>은 펼쳐진다.



  여성 미디어, 노동자의 풍경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지난 2026년 8월 22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최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선 여성의 노동에 관한 세 편의 영화, 슬라이드 <순영이의 사랑 이야기>, <부속품>,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가 상영되었다.

  이 중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2부로 구성되었고 1부는 갓난아이가 있는 기혼 직장 여성, 2부는 고등학교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한 여성의 노동조합 결성기를 다루고 있다. 예의 노등평등법의 실현에 결기를 드러내는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초기 장산곶매의 대표이던 이용배씨가 촬영을 맡았지만, 하루 만에 다시 장산곶매로 돌아가고, 변영주 감독이 16밀리 카메라를 처음으로 잡게 된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남성 동지들(전재복씨 등)이 조명의 기본등을 바리터의 임혜원씨에게 현장(한겨레 신문사 촬영)에서 전수하고, 변영주 감독이 16밀리 필름의 로딩을 배우고 촬영부(김영, 김소연 등)를 꾸리면서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임혜원씨가 처음 배운 조명 설치를 하러 높은 캐비넷 위로 올라가 고양이처럼 오래 웅크려 있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연출이었던 나는 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 여성 영화인이 나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촬영 감독이 떠난 현장에서 가졌던 비관적 생각의 흐름을 뒤집어, 여성 영화 워크샵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차분히 진행해나갔다. 이후 변영주 감독의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7)>, <낮은 목소리> 삼부작은 당시 우리들의 자구 노력과 판단에 대한 결정적 증거이자 뛰어난 결과물이다. 임혜원씨는 이후 프로듀서로 활동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프로듀서이자, 작가로 참여했던 서선영씨의 선하고 강단 있는 리더십과 현장 진행 능력, 당시 여성 사무직 노동자의 수기와 여성민우회의 자료에 기반을 둔 노동 현장에 대한 구체적이고 유머를 잃지 않는 시나리오는 영화를 완성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영화는 완성 후 전국 노조와 대학가에서 상영되었고, 제3세계 뉴스릴의 박혜정씨의 프로그래밍으로 뉴욕의 대안 공간에서도 상영되었다. 당시 배급은 임혜원, 홍효숙, 서선영씨 등이 주축으로 맡아 전국을 순회했다. 이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후 나는 뉴욕대에서 영화이론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평론가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 디렉터, 전주국제영화제 1회 공동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가 변영주 감독과 신혜은 프로듀서의 ‘보임’ 제작 장편 다큐 <거류(2000)>로 다시 영화 현장으로 돌아온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 경쟁작이다.

  제작 당시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의 상영 이후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 김동현 집행위원장과 한국영상자료원이 내가 가지고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디지털로 복원하고, 시네마 달이 배급을 맡게 된다. 바리터 출신인 권은선 씨의 기획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전시, 상영하면서 바리터의 활동이 더욱 알려지게 된다.

  그 다음에는 독일의 HKW, 런던의 한국 영화제(런던, 버벡대), Cal Arts의 Redcat 프로그램 등에서 상영되었다. 현재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를 다시 보면, 그 시대 사무직 노조 결성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담긴 것과 광고,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들을 16밀리 필름에 담아 혼합적으로 사용하고, 사무직 노동자 여성인 주인공이 서울의 소위 달동네 출신(당시 아현동, 신촌 일대에서 촬영)의 고졸 여성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라는 표제곡도 울림이 있다. <순영이의 사랑 이야기>에서 순영이는 상경한 미싱사를 지망하는 ‘공순이’이며, <부속품>의 주인공은 대학을 졸업한 취업생이다.

  다시 2026년 8월 22일 토요일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현장으로 돌아가자면 16밀리의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와 8밀리, 변재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사장이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또 하나의 문화’ 영화 동아리 ‘창’(필자도 초기 동인)의 작품 <부속품>, 그리고 슬라이드 작업 <순영이의 사랑 이야기>가 공존하는 여성 노동자 미디어의 풍경 속에, 차이와 연대로 이어지는 재발견되고 복원된 스크린 위에서 작은 풀들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여성영화, 마이너의 영화들이여 forever !




글쓴이. 김소영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뉴욕 주립대에서 실험영화, 미디어를 전공했다. 이후 여성영상집단 바리터에서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를 연출했고, 영화는 전국 노조에서 상영되었다. 뉴욕대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진으로 참여하고, 한겨레, 한겨레 21, 여성신문 등에 영화평 기고, 편저 <할리우드/프랑크푸르트>, <시네 페미니즘: 대중영화 꼼꼼히 읽기>, 저서 <시네마: 테크노 문화의 푸른 꽃> 등을 내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대 프로그램 디렉터, 전주국제 영화제 초대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이후 ‘여성사 삼부작’, 장편 극영화 <경> 그리고 ‘망명 삼부작’, <도시를 떠돌다>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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